고대한국의 주택은 수혈주거로부터 지상주거로 올라오게 되고, 삼한(三韓)시대에 완전한 목조건축 양식이 완성되었다. 가형토기(家形土器)는 당시의 완연한 목조 주택의 유형을 보여 주고 있다. 고대 3국 중 가장 먼저 문화의 중흥을 이룩한 고구려는 당시의 중국, 즉 북한(北漢)의 건축기술과 양식에 영향을 받아 가장 먼저 신건축 양식을 완성하여, 왕궁(王宮) ·관부(官府) ·사원 등은 기와를 얹고, 민가는 초옥(草屋)으로 지었음을 당시의 고분벽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한국 주거형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온돌구법은 고구려 시대에 보편화되었다. 먼저 발달한 고구려의 양식은 백제에 전수되고, 이것이 백제 자체의 문화와 융합하여 양식적 완성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백제의 일반주택은 4∼9개의 높은 기둥 위에 마루를 놓고, 상부에 목조지붕 구조를 얹는 고상식(高床式) 형태를 취하였다. 유구(遺構)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매우 높은 차원의 예술적 의도들이 포용된 형식으로 판단된다.
신라는 다시 고구려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반적인 건축형식은 고구려 ·백제와 같은 것이었으나 중국 남한(南漢)과 당(唐)나라의 영향을 가미하여 더욱 화려한 양식에다, 주택의 규모는 이미 계급에 따른 제한을 법으로 정할 정도로 성숙된 것으로 보인다. 즉, 골품제도(骨品制度)에 의한 신분 및 자격에 따라 건물의 규모 ·기단(基壇) ·두공(枓栱) ·대문형식 및 장벽(牆壁) 높이, 그리고 실내 장식 정도까지를 규제하였다.
[출처] 한국의 고대주택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