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헌부와 사간원은 별개 기관이었으나 실제 기능에서는 언론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언관으로서 밀접한 연관을 지녔으며, 간쟁(諫諍)·탄핵(彈劾)·시정(時政)·인사(人事)에 관한 언론 활동을 통해 왕·권신·전조(銓曹)의 전횡을 견제하고 관기(官紀)를 숙정하면서 양반관료체제를 확고히 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제2장에서는 세종대에 설치된 집현전의 관원이 말년에 언관화하는 점을 고찰해, 대간의 언론이 별도로 존재하나 그 취약성과 한계성을 보완하기 위한 언관의 구실을 집현전관이 담당하였음을 밝혔다.
그리고 뒤에 집현전의 직제와 기능을 계승해 1478년에 설치되는 홍문관이 대간과 더불어 언론 삼사(三司)를 이루게 되는 점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
제3장에서는 언관·언론과 왕권과의 상호 관계를 고찰하면서, 언관의 언론을 통해 군주의 과오나 전제를 막고 관리의 기강을 숙정하며 정치의 시비를 가려 유교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언관 제도의 이상이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