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국보 제11호
명 칭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
시 대 백제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익산시
설 명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익산 미륵사터에 있는 탑으로,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 있다.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다.
기단(基壇)은 목탑과 같이 낮은 1단을 이루었다. 탑신(塔身)은 1층 몸돌에 각 면마다 3칸씩을 나누고 가운데칸에 문을 만들어서 사방으로 내부가 통하게 만들었으며,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을 세웠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웠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목조건축의 배흘림기법을 따르고 있다. 기둥 위에도 목조건축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재료인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본떠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표현이 간략화되며, 지붕돌도 1층보다 너비가 줄어들 뿐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백제 말 무왕(재위 600∼641)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반쯤 무너진 곳을 시멘트로 발라놓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탑으로,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根据《三国遗事》一书的记载,百济武王和武王妃善化公主去师子寺的途中,在本弥勒寺址遇见了龙华山下的弥勒三尊,故在此处修建了三国时代最大的寺庙,它包括三个塔、三个金堂和回廊。最早的石塔—弥勒寺址石塔被指定为国宝第11号,于1993年得到了复原。
弥勒寺址石塔
作为百济武王时期(公元600-641年)建造的最大最高的石塔,具有典型的时代特征,最近进行分解和复原中
定林寺石塔和益山弥勒寺址(国宝第11号)中现在只剩2层的百济时代石塔,作为当时保留至今的遗物,是十分珍贵的历史资料。精巧简洁的造型美,展现出超凡的格调,散发着不一般的风采,是极为美丽的作品。它们作为百济时代的建筑,可谓是韩国石塔建筑的始祖。
石塔建筑,吸收了木建筑的长处,不仅仅是从架构上简单的模仿,而是融合了合理和建设性的创意,使石塔建筑整体的形态更为优美和庄重,赋予石塔更为高雅的气质。定林寺石塔,在最下面一层的塔身4面,还刻有苏定方将军的记功文,这些都是后事。在寺址发掘现场,还出土了刻有“定林寺铭”的瓦片和其他大量瓦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