路人借问遥招手,怕得鱼惊不应人。
낚시질 배운 더벅머리 아이, 삐딱하게 이끼 위에 앉으니 풀이 몸을 가린다.
낚시질 배운 더벅머리 아이, 삐딱하게 이끼 위에 앉으니 풀이 몸을 가린다.
행인이 길 물어도 멀찍이서 손만 내저을 뿐, 물고기 놀랠까봐 대꾸조차 않는다.
(蓬頭稚子學垂綸, 側坐매苔草映身. 路人借問遙招手, 파得魚驚不應人.)
― ‘낚시하는 아이(小兒垂釣·소아수조)’ 호령능(胡令能·785∼826)
낚시질에 몰두한 조마조마하고 진지한 동심이 깜찍하다. 이제 막 낚시를 배운 터라 이끼 낀 습지 위에 삐딱하게 앉은 자세부터가 불편하고 불안하다. 낚시에 집중하느라 그런 불편 따위는 깡그리 잊었나 보다. 몸을 가릴 만큼 잡초 덤불이 무성하니 인적 드문 한적한 곳을 제대로 고른 성싶다. 고기도 놀래지 않고 저 자신도 동그마니 떨어져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한데 갑자기 한 행인이 정적을 깨고 아이에게 길을 묻는다. 세상에, 행인의 말소리에 초보 낚시꾼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진 양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휘휘 손을 내젓는다. 쉿! 제발 조용히 해주세요. 행인의 입도 막고 고기도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이 귀여운 손짓에 행인은 빙긋 웃음을 머금었을 것이다. 아득히 멀어져 간 지난날의 낯설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시 속 아이들은 대개 목동이나 초동(樵童) 아니면 농사를 돕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 아이가 즐기는 유희는 좀 특별나다. 그래서인가. 순진한 듯 단호한 아이의 행동을 익살스레 바라본 시인의 눈길이 별스레 포근해 보인다. 백거이도 낚시질하는 아이를 포착한 시를 남겼는데, ‘연못가 한가로이 산책하며 물고기 구경하다, 마침 배 위에서 낚시하는 아이를 만났네. 똑같이 고기를 사랑해도 생각은 서로 달라, 나는 먹이를 주고 넌 낚시질을 하는구나’(‘물고기 구경’)라 했다.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가 물씬한 게 호령능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