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뒤지고 그릇 뒤엎으며 밤잠을 어지럽힌다.
듣자 하니 고양이가 새끼 몇 마리 데리고 있다는데,
생선 사다 버들가지에 꿰어 그 고양이 모시고 와야겠네.
(秋來鼠輩欺猫死, 窺甕飜盤攪夜眠. 聞道狸奴將數子, 買魚穿柳聘銜蟬.)
추래서배기묘사, 규옹번반교야면. 문도이노장수자, 매어천류빙함선.
- ‘고양이 얻기(걸묘·乞猫)’ 황정견(黃庭堅·1045~1105)
가을걷이 철이라 쥐떼가 창궐하지만 고양이가 죽고 없으니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다. 뉘 집인지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얘길 듣자 시인의 마음이 급해졌다. 고양이 먹이를 사 들고 금방이라도 데리러 나설 태세다. ‘모셔온다’는 한 마디에 조급함이 엿보인다. 고양이를 얻어올 땐 그 대가로 주로 생선이나 소금을 건넸던 모양이다. 여기선 ‘생선을 버들가지에 꿰어간다’고 했고, 육유(陸游)는 ‘소금 꾸러미 주고 고양이를 맞이했다’는 시구를 자주 썼다. 박학다식한 소양을 기반으로 정밀한 시어 선택을 강조했던 시인의 엄숙주의 시론과 달리, 이 시는 소재며 표현이 소박하고 생기발랄하다. 친구 진사도(陳師道)가 ‘골계적인 수법으로 농치는 듯하지만, 천년 후에도 독자들은 참신하게 여길 것’이라 평가한 이유도 이 때문이겠다.
한시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주인과 한가로이 여유와 온기를 나누는 반려묘의 역할도 하지만, 곡식 훔쳐 먹고 책 갉아먹는 쥐떼를 소탕하는 책임 또한 막중했다. 정약용은 ‘하늘은 본래 무엇에 쓰려고 너를 내렸나. 너에게 쥐를 잡아 백성의 고통 없애라 했지’(‘고양이의 노래’)라 했고, 육유는 ‘소금 담아주고 어린 고양이 들여놨더니, 많고 많은 산방의 책을 잘도 지키네’(‘고양이에게’)라 했다. 고양이에 거는 기대가 이렇듯 각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