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함과 한가로움이 이리 서로 다르니, 겨우 십리 길인데 벌써 열흘이나 못 만나고 있구나.
내 문득 고상한 흥이 돋아, 그댈 초대하니 부디 시끄러운 속세 방문을 꺼리진 말게.
예전에 심은 대나무 창 앞에 있으니, 그대와 더불어 주인이 되고 싶다네.
(濯足雲水客, 折腰簪笏身. 喧閑跡相背, 十里別經旬. 忽因乘逸興, 莫惜訪¤塵. 窓前故栽竹, 與君爲主人.)
탁족운수객, 절요잠홀신. 훤한적상배, 십리별경순. 홀인승일흥, 막석방효진. 창전고재죽, 여군위주인.
-‘왕질부를 초대하며(초왕질부·招王質夫)’ 백거이(白居易·772~846)
친구는 세상 영욕(榮辱)을 다 잊은 채 물 따라 구름 따라 자유로이 떠돌건만 시인은 관직에 얽매어 매양 굽신대야 하는 처지. 이리도 삶의 궤적이 판달라 평소 내왕이 잦던 친구와 쉬 어울리지 못하는 게 시인은 못내 아쉽다. 십리 길이라면 지척의 이웃 마을이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할 만큼 멀게만 느껴진다.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과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 번잡함이라는 대조적인 환경이 빚은 격절(隔絶)의 장벽을 허물 방법은 없을까. 어렵사리 시인은 창 앞 대나무를 핑계거리로 찾아낸다. 대나무의 곧음과 푸릇한 기상, 대밭의 은은한 향기라면 은거하는 친구에게도 주인 노릇을 자처할 명분이 되리라. 그래도 친구를 불러내는 마음은 조심스럽기만 해서 ‘문득 고상한 흥이 돋아 초대하노라’고 에두르는 시늉까지 곁들인다.
당시 백거이의 직책은 정9품 현위(縣尉). 한 고을의 세무와 사법 등 온갖 자질구레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백성들과 직접 접촉해야 했으니 퍽이나 번잡스러웠을 것이다. 이 무렵 다른 지인에게 보낸 시에서도 그는 ‘허리 굽히고 두 손 모으느라 심신이 편할 날 없다. 공무는 나날이 늘어가는 데 벼슬하고픈 마음 해마다 시들해지네’라고 했다. 신출내기 관리의 고충이 짐작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