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 질척거리는 눈밭을 밟는 것과 같으리.
진흙 위에 어쩌다 발자국 남긴대도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동서쪽을 가늠하랴.
노승은 이미 죽어 탑 속에 들었고 벽은 허물어져 우리가 남긴 시는 찾을 길 없구나.
지난날 험한 산길 아직 기억하는지? 길은 멀고 지친 데다 나귀마저 절름대며 울부짖었지.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老僧已死成新塔, 壞壁無由見舊題. 往日崎嶇還記否, 路長人困蹇驢嘶.) ―‘면지를 회상하며 시를 보낸 아우 자유에게 화답하다(和子由승池懷舊)’ 소식(蘇軾·1037∼1101)
젊은 시절 소식이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과거시험을 보러 수도 개봉(開封)으로 갈 때 면지(승池)라는 곳을 경유한 적이 있다. 그때 두 사람은 한 노승의 거처에 유숙하면서 승방(僧房)의 벽에 시를 한 수씩 남겼다. 후일 관리가 된 소식이 부임지로 갈 때 동생은 형을 배웅해준 후 개봉으로 돌아가 형에게 시 한 수를 보냈다. ‘면지를 회상하며 형에게 보낸다’라는 시에서 그는 형의 험난할 여정을 걱정하면서 ‘그 옛날 승방의 벽에 우리 함께 시를 남겼지’라며 당시 기억을 되짚었다. 마침 다시 면지에 들른 소식이 동생의 시에 화답하면서 옛 추억을 공유한 게 바로 이 시다.
인생살이 분주하게 뛰어봐야 다 부질없는 노릇. 기러기가 우연히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러기 떠난 후 그 방향을 따진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를 맞았던 이곳 노승은 이미 입적하여 부도탑(浮圖塔)에 모셔졌고 우리가 남긴 시도 흔적 없이 사라졌구나. 노승과의 인연도, 정성 들인 시도, 산길에서의 고생도 결국은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이려니. 세상사가 그렇다. 아우여, 삶의 노심초사 같은 건 훌훌 털고 느긋하게 소탈하게 세상을 만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