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이 밤 따라 떠나가고 봄날이 새벽같이 도래하겠지.
천지의 기운이 바뀌는 중에 낯빛도 은연중에 좋아질 테지.
봄기운,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어느새 뒤뜰 매화에 스며들었네.
今歲今宵盡, 明年明日催. 금세금소진, 명년명일최
寒隨一夜去, 春逐五更來. 한수일야거, 춘축오경래
氣色空中改, 容顔暗裏回. 기색공중개, 용안암리회
風光人不覺, 已入後園梅. 풍광인불각, 이입후원매.
-‘황명을 받아 제야를 읊다(應詔賦得除夜)’ 사청(史靑·당 초엽)
섣달그믐, 오늘밤이 다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이제 추위도 끝나고 곧 봄기운이 천지에 가득할 테고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모두들 예전의 화사한 낯빛을 되찾으리라. 자연의 이 놀라운 시혜(施惠)를 아직 감지하지 못했다면 저기 뒤뜰을 한 번 보라. 매화꽃 망울 망울에 이미 봄기운이 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믐밤의 추위가 하룻밤 새에 극적으로 봄기운으로 변할 리 만무하지만 그걸 시인의 섣부른 예단이랄 순 없다. 은밀하게 봄의 전령(傳令)이 이미 뒤뜰에까지 찾아들었으니 말이다.
제목에서 보듯 이 시는 임금의 명령을 받아 지은 시, 이를 응제시(應製詩)라 부른다. 응제시는 황실의 공덕을 기리거나 제왕의 치적, 태평성대를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봄기운이 매화꽃에 스미었다는 비유는 말하자면 백성들이 아직은 깨닫지 못하지만 황제의 바른 정치로 봄기운이 천지에 퍼질 것이라는 희망의 찬가인 셈이다. 이 시를 짓기 전 시인은 당 현종(玄宗)에게 상소를 올린다.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은 일곱 걸음에 시 한 수를 지었다지만 자기는 다섯 걸음이면 된다고 스스로를 추천한 것이다. 현종 앞에 불려와 즉석에서 지은 게 이 시다. 현종이 말했다. “그대가 조식보다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순발력 하나는 높이 살만 하구나.” 그에겐 그 즉시 관직이 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