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시야에 잡힌 길섶의 푸른 버들, 낭군더러 벼슬 찾으라 내보낸 걸 후회한다.
(閨中少婦不知愁, 春日凝粧上翠樓. 忽見陌頭楊柳色, 悔敎夫壻覓封侯.)
―‘안방 여인의 원망’(규원·閨怨) 왕창령(王昌齡·698∼757)
남편의 부재에도 젊은 아내는 근심 걱정 모른 채 느긋하다. 봄날의 정취를 즐기려 몸단장 새로 하고 누각에 오르는 호사도 누린다. 삶의 굴곡을 체감할 만큼 원숙한 나이도 아니고 부유한 환경이라 어려움을 모르고 지내왔다. 그러니 주저 없이 남편을 벼슬길로 내몰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무심하게 보아 넘겼던 풍광들이 오늘따라 더없이 새롭다. 새록새록 환하게 피어오르는 길섶의 버들 빛에 그만 마음이 흐트러진다. 밀물처럼 몰려오는 회한(悔恨)과 함께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 아, 왜 내가 벼슬자리 찾아보라 낭군을 다그쳤던가. ‘근심이라곤 모르던’ 데서 ‘낭군 내보낸 걸 후회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마음 깊숙이 감춰진 오랜 기다림과 원망이 푸른 버들의 충동질에 문득 눈을 뜬 것이리라.
시제 ‘규원(閨怨)’은 남자로부터 버림받거나 소외된 여자의 원한을 뜻한다. 이런 부류의 시를 규원시라 불렀고, 원한의 주체가 궁녀 혹은 비빈(妃嬪) 등 궁중 여인일 경우 별도로 궁원시(宮怨詩)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다. 이 시들은 드물게는 여성 본인이 짓기도 했지만, 시인이 여인들의 처지나 심정을 대변하듯 읊은 게 대부분이다. 때로 시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소외감을 그런 여인의 처지에 빗댄 경우도 있고, 또 책상머리 시인의 무병신음(無病呻吟·병도 없으면서 아픈 척 끙끙대다)처럼 억지로 짜낸 경우도 있다. 이백, 왕창령 등 실제 종군 이력을 거친 시인들의 규원시는 그래서 더 진정성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