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서리에 초목들이 시들해지자 우뚝하니 높은 가지 다 드러나네.
숲에 붙어 있으면 아무도 몰라보지만 저 홀로 서 있으면 다들 경탄해 마지않지.
술병 든 채 차가운 가지 만져도 보고 이따금 멀찍이서 바라도 보네.
우리네 인생 허황한 꿈만 같거늘 왜 그리 세상일에 얽매여 살까.
(靑松在東園, 衆草沒其姿. 凝霜殄異類, 卓然見高枝. 連林人不覺, 獨樹衆乃奇. 提壺撫寒柯, 遠望時復爲. 吾生夢幻間, 何事설塵羈.)―‘음주(飮酒, 제8수)’ 도잠(陶潛·365-427)
제아무리 빼어난 자태라도 소나무가 잡목 더미에 묻혀 있는 한 별무소용이다. 주변 잡목들이 된서리를 맞아 사그라지면 그제야 소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그 위용을 드러낸다. 숲을 이루고 있을 때도 소나무는 별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것은 독야청청 저 홀로 우뚝할 때 비로소 진면목이 나타나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박봉 때문에 굽신거리며 관리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전원 은거를 도모했던 도연명. 그는 잡목 더미와 솔숲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우뚝한 고송(孤松)에서 정서적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술병을 들고 가 가지를 어루만지거나 때로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이고 쾌감이었으리라.
소나무, 잣나무의 고절(孤節)과 지조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제주에 유배된 자신을 위해 북경에서 귀한 도서를 어렵사리 구해다 둔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의리와 지조를 생각하며 추사는 추위에 강고하게 버티고 선 송백(松柏)을 화폭에 담아 그에게 선사했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송백이 가장 늦게 시든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한 공자의 말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