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고도 눈물만 그렁그렁, 초왕과는 말도 나누지 않았다오.
(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 ―‘식부인’·왕유(王維·701∼761)
식부인은 춘추시대 식국(息國) 군주의 아내. 초나라 문왕(文王)이 식국을 정벌하여 식부인을 빼앗아오자 식국 군주는 울분을 삭이다 병사하고 말았다. 끌려온 식부인은 문왕과의 사이에 두 아들까지 두었지만 문왕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호사로운 궁중 생활이었지만 꽃을 보고도 눈물을 쏟을 정도로 식부인은 옛 남편을 그리워했고, 그만큼 문왕에 대한 원한도 깊었다.
오랜 역사 속 상처를 왕유가 왜 새삼 들추어냈을까. 당 현종의 친형 영왕(寧王)은 수십 명의 미녀를 곁에 둘 정도로 생활이 방탕했다. 하루는 어느 떡장수 아내의 미색에 반해 여자를 탈취해왔다. 1년이 지나 한 연회석상에서 영왕이 여자에게 물었다. ‘아직도 남편을 그리워하는가?’ 그간 영왕의 총애를 듬뿍 받았지만 여자는 묵묵부답,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영왕이 떡장수를 불러들였고 남편을 본 여자는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연회에 모인 손님들이 이 애절한 장면을 목도하고는 동정을 금치 못했다. 분위기가 싸늘했지만 영왕은 개의치 않고 다들 시 한 수씩 지으라고 명했다. 첫 지목을 받은 이가 바로 왕유. 그는 떡장수 아내의 처지를 식부인에 빗대었다. 그대가 아무리 총애한들 남편을 향한 내 마음이 변할 리 있겠소? 그대와는 말도 섞기 싫소. 여자의 심정을 헤아린 시인은 영왕의 횡포를 이렇게 비꼬았다. 수채화처럼 담담한 산수시를 주로 읊었던 시인이지만 스무 살 젊은 시절에는 불의에 맞서는 이런 기개도 있었다. 시인의 용기 있는 비유 덕에 결국 여자는 남편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