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는 재능이 출중했지만 강직한 성품에 소신껏 바른 소리를 곧잘 하는 바람에 관료 생활은 파란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정쟁의 와중에서 사형의 위기까지 맞았지만 멀리 후베이(湖北)성 황저우(黃州)로 좌천되면서 목숨만은 부지했다. 그곳에서 얻은 아들이 넷째 소둔(蘇遁). 아기 출생 만 한 달이 되는 날, 풍습에 따라 배냇머리를 깎고 목욕시키는 ‘세아회(洗兒會)’ 잔치 자리에서 이 시를 읊었다.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련만 동파는 아들이 어리석고 아둔해도 무탈하기만을 소원했다. 그러고도 공경대부를 기대한다니 여간 모순이 아니다. 언외(言外)의 속내는 무엇일까. 지금 공경대부에 오른 이들이 결국은 어리석고 아둔했기에 무탈했다는 사실을 은근히 빈정댄 것이거나, 자신의 총명이 오히려 일생을 그르친 화근이었다는 회한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큰 지혜를 가진 자는 자기 재능을 과시하지 않기에 언뜻 어리석어 보인다’는 노자의 ‘대지약우(大智若愚)’를 강조한 아비의 당부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화답한 시가 있는데 청대 전겸익(錢謙益)의 ‘반동파세아시(反東坡洗兒詩)’가 흥미롭다. ‘동파는 자식 키울 때 총명할까 걱정했지만/나는 우둔한 탓에 일생을 그르쳤나니./내 자식은 의견 굽히지 말고 수완도 잘 부려서/수단방법 안 가리고 공경대부 되었으면.’ 시제와 표현도 동파를 반박한 듯하지만, 그 역시 수단껏 수완을 잘 부린 자가 공경대부에 올랐다는 ‘일그러진 총명’을 질타한 점에서는 판박이다. 재치가 번뜩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