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얼룩을 닦아내면서
얼룩에게 내내 미안했다
오랫동안 누구의 얼룩도 되지 못한 내가
괜한 죄 짓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고
거울 속의 나는 안개처럼 흐려졌다
한때, 나는 그녀의 얼룩이 되기 위해
몸부림친 적 있었다
그 얼룩이 상처로 전이되는 과정을
숨막히게 지켜보았다
그녀가 입술 동그랗게 벌려
후후 입김 불며 다가올 때
나는 뼈저리게 황홀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얼룩 속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상처의 꽃,
내가 회심의 미소도 짓기 전에 그녀는 돌연
행선지 없는 막차를 타고 훌쩍 떠났고
나는 오지에 오래오래 남았다
- 서상권의《얼룩》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