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일어나 김매러 나갔다, 달빛 속에 호미 메고 돌아온다.
풀이 길게 자란 좁다란 길, 내 옷자락이 저녁 이슬에 젖는다.
옷이야 젖어도 아까울 거 없지만, 내 소원만은 어그러지지 않았으면.
(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 道狹草木長, 夕露霑我衣. 衣霑不足惜, 但使願無違.)
―‘전원으로 돌아오다(귀원전거·歸園田居)’ 제3수·도잠(陶潛·365∼427)
달빛 받으며 호미를 멘 채 좁다란 풀숲 길을 헤치고 귀가하는 시인. 황무지를 개간한 탓에 온종일 밭매기하는 고된 일과지만 왠지 여유로워 보인다. 내 소망이 어그러지지 않는다면 콩 싹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든, 저녁 이슬에 옷자락이 젖든 개의치 않는다. 시인의 소망은 무엇일까. 평소 꿈꾸었던 전원생활을 순조롭게 꾸려 갔으면 하는 것일 테다. 부와 권세를 위해 관직을 고수하면서 쉼 없이 앞을 향해 내달리는 여느 사대부의 삶과는 딴판이다. 당시 시인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현령(縣令) 자리를 석 달도 채우지 않고 내던졌다. 쌀 다섯 말의 녹봉(祿俸)에 굽신대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이전에도 그는 대여섯 차례 사직과 귀향을 반복한 경험이 있다. 세속의 관습을 좇으며 풍요를 누리느냐, 불편과 가난을 감수하되 정신적 평안을 얻느냐로 갈등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문벌주의 사회 풍조 덕분에 벼슬살이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음에도 흔연히 전원살이를 결행한 시인의 속내는, 그가 관직 생활을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힌’ 것으로 여겼던 데서 잘 드러난다. 새장을 떠난 다음에야 그는 ‘뜰 안엔 세상의 번잡함이 없고 빈방엔 한가로움이 넘쳐난다’는 걸 실감했다. 이후 시인은 ‘경전을 읽어도 깊은 뜻을 헤아리느니 대충 이해하면 된다’는 느긋한 마음새로 전원생활의 여유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