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따면 남은 오이 더 잘 자라고, 둘 따니 오이는 듬성듬성.
셋 따면 그나마 괜찮을지 몰라도, 다 따내면 덩굴만 안고 돌아가야 하리.
(種瓜黃臺下, 瓜熟子離離. 一摘使瓜好, 再摘令瓜稀. 三摘尙自可, 摘絶抱蔓歸.)
종과황대하, 과숙자이리. 일적사과호, 재적령과희. 삼적상자가, 적절포만귀.
- ‘황대 언덕의 오이(황대과사·黃臺瓜辭)’ 이현(李賢·655~684)
황제를 꿈꾸었던 무측천(武則天)은 당 고종(高宗)이 중병을 이유로 조정 대사를 일임하자 태자 이충(李忠)을 모반죄로 처결하고, 자신이 낳은 장남 이홍(李弘)을 태자로 책봉했다. 후일 이홍마저 의문 속에 사망하자 차남 이현(李賢)을 태자로 삼았다. 이현은 야심만만한 모후(母后) 측천과 줄곧 갈등을 빚었고, 자신 또한 앞선 태자들의 경우처럼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예감했다. 시는 자신과 형제들을 오이에, 모후를 농부에 비유하고 있다. 농부여, 솎음질도 정도껏 해야 열매가 잘 자라는 법, 죄 따버리면 남는 건 덩굴뿐이지 않은가. 더 이상 자식들을 해코지하지 말라는 애절한 하소연이었다.
자식 입장에서 어미와의 알력을 이유로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하소했을까 논란이 없지 않지만, 이 시를 수록한 ‘전당시(全唐詩)’에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우려한 이현이 대놓고 말은 못하고 이 가사를 지어 악공에게 노래로 만들게 했다. 모후가 노래를 듣고 각성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시 속에 묻어나는 시인의 고뇌가 아릿하게 전해진다.
결국 이현은 모반죄로 몰려 목숨을 잃었고, 삼남 이철(李哲)과 사남 이단(李旦)이 차례로 황위에 오르지만 측천이 황제로 추대되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들은 15년 황좌를 지킨 측천이 쫓겨난 후에야 황위를 되찾았다. 주렁주렁 잘 익은 오이는 일찌감치 솎아져 사라지거나, 고난 속에서 오욕의 멍에를 쓰고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