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가 모아놓은 신령하고 빼어난 경관, 밤과 새벽처럼 또렷이 빛깔이 나뉘는 산의 남과 북.
겹겹이 피는 구름 보며 확 트이는 가슴, 둥지 찾는 새 좇느라 멈추지 못하는 눈길.
내 언젠가 저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이 얼마나 작은지 한번 굽어보리라.
- ‘태산을 바라보며(망악·望嶽)’두보(杜甫·712~770)
岱宗夫如何, 齊魯靑未了. 대종부여하, 제로청미료.
造化鍾神秀, 陰陽割昏曉. 조화종신수, 음양할혼효.
蕩胸生層雲, 決¤入歸鳥. 탕흉생층운, 결자입귀조.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회당능절정, 일람중산소.
태산은 중국 황제가 천신과 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할 때 반드시 올랐을 만큼 영산(靈山)으로 예우받았던 산. 이 산을 경계로 각각 북쪽과 남쪽에 전국시대 제나라와 노나라가 위치할 정도로 태산은 넓고 컸다. 자태가 빼어나고 신령스런 정기가 감도는 건 조물주의 솜씨 덕분이요, 응달과 양달의 차이가 밤과 새벽 만큼이나 엄청난 건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이다. 가슴의 응어리를 말끔히 씻겨주는 뭉게구름, 산속을 누비다 둥지로 드는 새들의 자유로운 비상에 시인은 취한 듯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한갓 장엄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때문에 정상 등정을 꿈꾸진 않았을 테다. 당시 시인은 첫 과거시험에서 실패를 경험하긴 했어도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유람하며 삶의 지혜를 다질 것이라 다짐했던 스물넷의 청년. 산 중의 으뜸이라는 태산 꼭대기에 올라 뭇 산들의 이모저모를 조감(鳥瞰)해 보리라는 패기를 내뿜었다. 세상사 일체를 자신의 시각으로 재단해 보겠다는 담대한 천하 경영의 의지이자 호연지기로 읽힌다. ‘공자께서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여기셨다’는 맹자의 말을 시인은 ‘뭇 산들이 얼마나 작은지 한번 굽어보리라’로 변용했다. 남다른 지혜나 안목을 가진 자만이 대국(大局)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뜻을 담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