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올빼미가 울어댈 땐 나 몰라라 하면서도/겨잣가루 묻힌 깃털로 자기 무리를 해치려 하네.
(何曾解報稻粱恩, 金距花冠氣알雲. 白日梟鳴無意問, 唯將芥羽害同群.) ―‘투계를 보며 우연히 짓다(觀鬪鷄偶作)’ 한악(약 842∼923)
투계는 기원전부터 유행했던 전통 놀이이자 오락. 도박꾼들에겐 투기 수단으로도 이용되었고 승부욕이 강한 귀족 사이에서는 자존심 대결로 비화하기도 했다. 황궁에 쌈닭 사육장을 설치하고 조련을 전담하는 관리를 둘 정도로 극성스러운 황제도 있었다. 발톱에 쇳조각을 장착하고 상대의 시야를 흩뜨리기 위해 날개에 겨잣가루까지 발랐으니 이번 싸움은 이판사판의 혈투로 이어질 분위기다. 중무장한 채비도 그러려니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선 기세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흐르는 구름조차 막아 세울 기세라니 실로 당당하고 용맹한 모습일 테지만 시인은 녀석이 마냥 고깝게만 느껴진다. 녀석이 올빼미의 등장을 모른 척 외면하고 있어서다. 올빼미는 분명 쌈닭에 비해 훨씬 나약한 다른 닭들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약자는 나 몰라라 하면서 제 동족을 해코지하려 들다니, 시인은 ‘곡식 먹여 길러준 주인의 은혜도 모르는’ 녀석의 속내를 진작부터 간파했던 것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쌈닭을 향해 정색을 하고 반감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쌈닭의 이기적인 행태에서 시인이 떠올린 장면은 당시 각지에 할거했던 번진(藩鎭·특정 지역에서 경제, 군사권을 행사했던 조직) 세력의 전횡이었다. 국운이 극도로 쇠미해 가던 당 중엽 이후 저들은 외적의 침략은 도외시한 채 가렴주구로 백성을 괴롭혔다. 투계에 드리워진 동족상잔의 음영(陰影)에서 시인은 현실의 비극을 읽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