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벗이 만약 이걸 몰라준다면 쓸쓸한 고향 산으로 돌아가 누우리.
(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 知音如不賞, 歸臥故山秋.)
―‘시를 짓고 나서(題詩後)’ 가도(賈島·779∼843)
어떤 이는 세 걸음 혹은 일곱 걸음 만에도 시 한 수를 술술 뱉어냈건만 시인은 괴팍하다 싶을 정도로 시 짓기에 고심했다. 시 2구를 짓는 데 무려 3년이 걸리고 그걸 읊으면서 눈물까지 쏟아냈다니 과연 유별나긴 유별나다. 그것도 모자라 친구가 자기 시를 이해해 주지 않으면 아예 고향 땅에 숨어 살겠다고까지 선언한다. 그가 3년 걸려 얻었다고 말한 시구는 어떤 것일까. 시인이 승려인 사촌동생 무가(無可)를 송별하면서 지었다는 구절, “연못 속 그림자 따라 홀로 걸으며/더러는 나무 곁에서 쉬기도 하겠지(獨行潭底影, 數息樹邊身)”라는 2구가 그것이다. 길 떠나는 동생의 앞길이 마냥 외롭고 쓸쓸하리란 걸 상상해 본 시구다. 시구를 다듬느라 고심했다기보다는 이별의 상심이 그만큼 지극했다는 흔적이리라.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처럼 그에게는 시노(詩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유난스레 까탈스러운 시벽(詩癖)으로 해서 표현과 의미 하나하나까지도 곱씹어가며 다루었다는 뜻일 터다. ‘시(詩)는 마치 언어로 사원을 짓는 일과 같아서 시인은 구도자의 정신과 자세로 시를 쓴다’(천양희 시인)는 말이 어쩌면 가도의 경우에 제격으로 어울릴 성싶다. 반복해서 글을 고치고 가다듬는 퇴고(推敲)라는 성어의 주인공이기도 한 가도. 매년 섣달 그믐날이면 그는 그해 쓴 시를 모두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분향재배한 후 “이것이 내가 1년 동안 고심한 대가로구나”라 하면서 밤새 술 마시며 자축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