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만은 푸른 잎과 붉은 꽃망울이/말고 펴고 열리고 닫히는 게 마냥 자연스럽지.
늘 이렇게 잎과 꽃이 서로를 받쳐주거늘/잎 지고 꽃 시들면 정말 마음 아프리니.
(世間花葉不相倫, 花入金盆葉作塵. 唯有綠荷紅함D, 捲舒開合任天眞. 此花此葉常相映, 翠減紅衰愁殺人.)
―‘연꽃에 바치는 노래(贈荷花)’ 이상은(李商隱·812∼858)
꽃은 잎을 배경으로 더 화사하게 빛난다. 목련이나 복사꽃처럼 저 혼자 일찌감치 피었다가 꽃잎이 질 즈음에야 잎이 무성해지는 바람에 서로의 인연이 짧은 경우도 더러 있지만 한 뿌리에서 나온 만큼 둘의 운명은 각별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은 온통 꽃으로만 쏠릴 뿐 잎을 따로 예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사그라져 흙으로 변할 때까지 잎은 뭇사람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기 십상이다. 이 불공평한 예우를 포착한 시인은 잎과 꽃이 서로를 받쳐주며 조화를 이루는 연꽃에 주목한다. 진흙에서 나왔으되 오염되지 않는 고결한 연꽃에서 옛사람은 군자의 기품을 읽었지만 시인의 눈에는 꽃과 잎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공영(共榮)과 공생의 품성이 더 대견스럽다.
자연 속 사물의 특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게 영물시(詠物詩)의 속성이지만 영물을 통해 오묘한 삶의 이치를 끌어내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던 게 바로 한시의 미덕. 꽃망울과 잎의 어우러짐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연꽃을 통해 사람 사이의 조화를 기대했을 테고 다른 한편으론 조화의 어그러짐을 우려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 시는 그래서 신혼의 시인이 아내와의 백년해로를 염원하는 노래로 보기도 하고, 험난한 관리 생활을 겪으며 대인관계에서 느낀 염량세태를 아쉬워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