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직녀가 아니시라면 어떻게 견우를 꾸짖으시는지?
(素面倚欄鉤, 嬌聲出外頭. 若非是織女, 何得問牽牛.)
―‘현령 부인에게 사죄하다(사령처·謝令妻)’ 이백(李白·701∼762)
시적 순발력이 돋보였던 이백. 소년 시절 고향 마을에서 현령(縣令)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아전을 지낸 적이 있다. 한번은 소를 끌고 현령이 거처하는 대청 앞을 지나는데 현령의 아내가 이를 마뜩잖게 여기고 그를 나무랐다. 이백이 즉각 시 한 수로 응수했다. 백옥같이 고운 얼굴, 낭랑한 목소리, 그대는 필시 천상의 직녀일 터, 아니라면 견우에게 말을 걸 리가 없지. 견우(牽牛)는 문자 그대로 ‘소를 끌다’는 뜻, 소 끌고 지나는 자신을 나무라는 현령 부인이 직녀처럼 아름답다고 칭송함으로써 곤경을 벗어나려 한 것이다. 게다가 시적 대상을 자신과 은근슬쩍 일체화하기까지 했으니 그 반격이 제법 대담하달 수도 있겠다. 부인에게 사죄한다는 시제와는 딴판으로 상대는 그것이 자신을 넌지시 비꼬는 말투임을 눈치채기나 했을까.
어느 봄날 저녁, 이백이 현령과 외출했다가 농민들이 불을 놓아 산을 태우고 자리를 떠난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다. 마침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고 벌겋게 남아있었다. 현령의 시심이 발동했다. “들불 놓아 산을 태운 자리, 사람들은 돌아갔는데 불은 여전히 타고 있네.” 이렇게 읊었지만 도무지 다음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백이 이를 듣고 그 뒤를 이었다. “화염은 붉은 해와 함께 멀어져가고 연기는 저녁 구름 따라 날아오르네.” 이런 이백의 재기를 높이 산 현령은 그와 함께 곧잘 시도 짓고 주연도 즐겼다. 하지만 백성을 대하는 현령의 안목에 실망한 이백은 오래지 않아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