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人性僻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老去詩篇渾漫與, 春來花鳥莫深愁. 新添水檻供垂釣, 故着浮사替入舟. 焉得思如陶謝手, 令渠述作與同遊.) ―‘바다처럼 드센 강 위의 단상(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강상치수여해세요단술)’·두보(杜甫·712∼770)
거침없이 쏟아냈던 이백과 달리 두보는 정형시의 정격(正格)을 지키는 데 치밀하고 신중했다. 역대 문인들이 두시(杜詩)를 교과서 삼아 학습한 이유다. 좋은 시구를 얻으려 시인은 고심을 거듭했다. ‘시어가 남들의 경탄을 자아내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는 명구에 그런 엄격함이 함축돼 있다. 젊은 날의 감흥이 사라진 때문인지 늘그막엔 꽃과 새를 보고도 별 고심 없이 ‘되는대로’ 시를 지었다. 자조인 듯 자기 연민의 독백인 듯도 한 이 탄식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초야에 묻혀 울적한 나날을 보내던 두보, 낚시와 뱃놀이가 즐거운 소일거리였을 리 만무하다. 하물며 마주한 강물이 바다처럼 드센 기세를 드러내고 있음에랴. 더러 이 대목을 ‘늘그막엔 시가 저절로 이루어져 꽃과 새를 보면 고심하는 법이 없었다’로 해석하여 시인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다고도 하지만 맥락상 부합하지 않는다. 굴곡진 삶처럼 시작도 관직도 순탄하지 않음을 암시한 노심초사이리라. 산수시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는 사령운(謝靈運), 세속의 굴레를 흔연히 벗어던진 도연명이 차라리 부러웠던 것이다. 시성(詩聖)의 반열에까지 오른 두보가 저들의 시상(詩想)을 배우고자 염원하는 아이러니가 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