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저도 그대 얼굴 뵙기 민망하니 오시려거든 날 어둑해지면 그때 돌아오셔요.
(良人的的有奇才, 何事年年被放回. 如今妾面羞君面, 君若來時近夜來.)
―‘남편의 낙방(부하제·夫下第)’ 조씨(趙氏·당대 중엽)
아내가 보기에 남편은 재주가 남달리 특출하다. 한데 왜 해마다 과거에 낙방하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해마다 그냥 돌아오신다’고 했지만 흔쾌한 발걸음이 아니다. 시 원문에 ‘피방회(被放回)’라 했는데 이는 쫓기다시피 돌아왔다는 뜻이다. 번번이 낙방했으니 아내 쪽이든 남편 쪽이든 서로 만나기가 민망했거나 아니면 지인 보기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굳이 귀향하겠다면 어스름을 틈타 슬그머니 들어오라고 당부했다. 당 덕종(德宗) 시기 두고(杜羔)라는 선비의 아내 조씨가 지은 작품이다. 시재가 뛰어난 아내는 농반진반으로 은근슬쩍 내비친 말이겠지만 남편에게는 절반의 진담이 더 사무치게 다가왔을지 모른다. 농담이라도 제대로 정제되지 않으면 그게 곧 구박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긴 구박이라도 이 정도 진솔하게 나온다면 아내의 까칠한 듯 대범한 충고가 차라리 고마울 수도 있었겠다. 어쨌든 후일 두고는 진사 급제했고 공부상서(工部尙書)에까지 올랐다.
두고는 급제 후에도 제법 아내의 속을 썩였던 듯, 남편의 귀향을 학수고대하던 아내는 이런 시도 하나 남겼다. “장안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시끌벅적 요란법석 그 기세가 대단할 터./낭군께선 뜻도 이루시고 지금 한창 젊은 나이,/오늘 밤은 어느 기방에 취해 잠드셨는지.” 아내가 남편의 급제를 진실로 반겼을지 살짝 의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