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堂前撲棗任西隣, 無食無兒一婦人. 不爲困窮寧有此, 只緣恐懼轉須親. 卽防遠客雖多事, 便揷疏籬却甚眞. 已訴徵求貧到骨,正思戎馬淚盈巾.)
―‘다시 오랑에게 드린다(우정오랑·又呈吳郞)’·두보(杜甫·712∼770)
황제의 간관(諫官)을 지내다가 조정에서 밀려난 두보는 쓰촨(四川)성 절도사의 막료로 들어가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갔다. 절도사마저 세상을 뜨자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에 초가를 하나 얻어 머물렀다. 집 뜨락에 대추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가을이면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후일 두보는 이 초가를 먼 친척조카 오랑(吳郞)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수십 리 떨어진 곳에 따로 초가를 하나 마련했다. 한번은 두보가 이 옛집에 들러보니 뜻밖에도 집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어 깜짝 놀랐다. 마침 오랑의 아내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기에 두보가 오랑에게 쪽지를 남겼는데 바로 이 시다. 이웃 아낙이 왜 창피를 무릅쓰고 남의 집 대추를 따러 오겠는가. 내 진작부터 그녀에게 얼마든지 따 가라 했네. 그녀가 낯선 그대에게 경계심을 갖는 건 공연한 걱정이라 쳐도 엉성하게나마 울타리를 쳐놓았으니 그녀가 오죽이나 맘 졸였을까. 이 전란의 시대에 고달픈 삶을 사는 이가 어찌 그녀 하나뿐이랴는 생각에 나도 마냥 눈물이 흐른다네.
행여 자신이 오랑의 야박함을 힐책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조카뻘이지만 시인은 그 나름대로 공손하게 ‘드린다’고 표현했다. 아낙의 딱한 처지도 고려하면서 조카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는 시인의 조심스러운 배려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