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계는 기원전부터 유행한 중국의 전통 오락. 특히 당 현종은 계방(鷄坊)을 설치하여 쌈닭 수천 마리를 사육했고 장안에서 대규모 투계 대회를 벌이기도 했는데 정월 대보름, 청명과 한식, 중추절에 벌어지는 대회에는 수많은 백성을 동원함으로써 만천하에 태평성대임을 과시했다. 민간에도 투계 열풍이 몰아쳐 부호 중에는 거금을 들여 대량의 쌈닭을 구입하기도 했고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시에 등장하는 열세 살 소년의 이름은 가창(賈昌), 그는 투계 재능 하나로 일약 황제의 총애를 받아 부귀영화 다 누렸으니, 고관대작의 자제가 부럽지 않았다. 현종이 태산으로 봉선(封禪·황제가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는 의식) 행차에 나섰을 때 가창도 투계 삼백 마리를 데리고 수행했다. 이때 행차에 따라 나섰던 그의 부친 가충(賈忠)이 태산 아래서 죽음을 맞았는데, 황제는 호송 인원을 붙여 장안까지 운구토록 했다. 투계와 경마는 잡기이자 유희, 게다가 흔히 도박으로도 이용되었기 때문에 시에서 이를 장엄한 황제의 봉선 행차와 연관지은 건 황제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다. 이백도 “길에서 만난 투계꾼, 의관과 수레가 어찌 그리 번쩍이던지?/그 콧김은 무지개도 날려버릴 기세, 행인들은 하나같이 벌벌 떨고만 있네”라는 시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