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출하고 손쉬운 새해 인사로 분주히 연하장을 주고받던 때가 있었다. 한데 실용과 효율을 앞세우는 세태 변화와 함께 연하장은 그저 허울뿐인 인사치레가 된 듯하다. 다문다문이나마 오가더니 휴대전화 만능 시대가 되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우편함에 넘쳐나는 건 청구서며 광고물뿐이다. 휴대전화 신호음과 함께 화려한 연하장 화면이 무시로 떠오르지만 ‘사연’이 담기지 않은 그걸 누가 반색하고 반기겠는가. 설렘이니 기다림이니 하는 따위가 도무지 낯설어진 현대인에게 연하장은 ‘허울뿐인 예법’에조차 끼어들지 못하나 보다.
연하장은 유래가 꽤 오래다. 명첩(名帖) 혹은 배첩(拜帖)이라 하여, 옛날엔 처음 방문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이름, 고향, 직함 따위를 적은 쪽지를 건네는 풍습이 있었다. 일종의 명함이었다. 신년에는 거기에다 안부를 묻거나 덕담을 담은 간략한 문구를 추가했다. 연하장 구실을 한 셈이다. 명첩은 한대에 비롯되었다는데 처음엔 대나무 조각을 평평하게 다듬어 만들었고, 종이 발명 이후로는 주로 붉은 색지에 보내는 이의 정성과 멋들어진 필체를 담았다. 명대에는 사대부집 대문에 연하장을 받는 봉투까지 매달아 둘 정도로 꽤 보편화되었다.
여기저기서 보내온 ‘명지(名紙·고급 연하장)’가 집 안에 가득하지만 시인은 영 마뜩잖다. 평소 예법이 지나치게 소략해졌다고 비판하던 이들이 왜 이런 겉치레 인사에 열중하는가. 자신도 시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연하장을 여럿 보내면서도 시인은 허울뿐인 이 인사법이 못내 개탄스러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