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그것으로 끝인 섣달 그믐날, 오면 언제나 속이는 정월 초하루’라고 했다. 제야(除夜)에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과 새로운 다짐이 합수(合水)한다. 하여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우리네 마음은 괜스레 분주하고 어수선해진다. 좌충우돌하며 덕지덕지 오점을 남긴 삶의 궤적을 되짚기도 하고, 잊고 지냈던 고향을 떠올리고 격조했던 이들을 하나하나 가슴속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유순하고 아수룩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세파의 교란을 피하려 바동거리는 범인(凡人)에게 그것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이던가. 한 해의 비망록에 빼곡히 박힌 욕망과 다짐들이 우리의 가슴께를 묵직하게 짓누를지라도 그 잔상을 애써 지워가며 결국은 반성과 각오라는 이름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저 세상의 어두운 함정에서 용케도 벗어난 것에 안도하고 자위하면서.
태자좌찬선대부(太子左贊善大夫)로 있던 백거이가 상소문 시비에 휘말려 먼 남쪽 땅으로 좌천된 때는 그의 나이 마흔넷. 이 시는 그가 강주사마(江州司馬)를 거쳐 충주자사(忠州刺史·충주는 지금의 충칭·重慶)로 있을 때 지었다. 부질없는 공명심에 객지를 떠돌게 된 처지가 향수와 맞물려 그지없이 씁쓸한 세밑이었을 것이다. 병으로 초췌해진 몰골이라 지난날의 빛나던 용모는 찾을 길 없고 객지의 세월은 하릴없이 빠르게만 지났을 것이다. 마흔여덟 제야의 ‘반성’이 있은 이듬해에 시인은 다시 조정으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