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 소녀는 야경을 감상하는 것처럼 하면서 양몽환을 뚫어지게 쏘아
보며 곧은 자세로 거만하게 지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일양자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군! 그러나 우리에게 악의는 없는 모양이다.」
이때 양몽환이 스승을 바라보며
「영계현에서 제가 만난 일이 있는데 우리들의 뒤만 쫓고 있습니다.」
하고 그동안의 일을 자세하게 말했다
일양자는 한참 생각하다가
「무술계에는 상상 이외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 항상 조심하면 염려
없다.」
그는 말을 하면서 그 청의 여인의 거동과 뒤를 쫓는 원인을 생각해 보
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하루 밤을 노숙한
후 다음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길을 재촉했다. 날이 새면 걸음을 재촉
하고 딴에는 노숙을 하며 십 여일을 지난 후 비로소 강서성에 도달하였
다.
도착한 즉시 가마를 버리고 마차로 옮겨 탔다. 그리고 행인의 눈을 피
하기 위하여 하림과 동숙정을 마차에 태웠다. 그러나 역시 화상과 도사
그리고 경장을 한 양몽환의 늠름한 모습이 사람의 눈을 피하기에는 힘들
었다.
며칠을 쉬지 않고 마차를 몰아 파양호 부근의 교두부에 도달하였다.
이곳은 상업 도시여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일양자는 일행을 이끌고 여인숙을 찾아 피곤한 몸을 쉬게 한 후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넓은 파양호에서 비록 천하에 명성을 떨친 묘수어은 소천의 이지만
어디 가서 찾는다는 말인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두부에 도착한 사흘 째,
아침부터 묘수어은 소천의를 찾으러 나간 일양자는 점심때가 되어도 돌
아오지 않았다.
양몽환은
(가만히 앉아서 돌아오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가서 찾아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왕래하는 사람들로 붐벼 정신
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람들 틀에 끼여 밀리는 대로 얼마를 배회하는 동안
에 파양호 호반까지 오게 되었다. 호중(湖中)에는 수 십 척의 배가 여기
저기 정박해 있고 끝없는 호수의 경치는 동정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양몽환은 스승을 찾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도
취되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홀연!
은방울 같은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호…… 호…… 왜 혼자 오셨어요? 사매는 안 오시고……」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청의 소녀가 생끗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양몽환은 흠칫 놀랐으나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녀를 향해 미소를 띠
우고는 다시 호수로 눈을 옮겼다.
순간 ….
청의소녀 이요홍은 한줄기의 수치감과 분노로 눈물을 흘릴 듯 했으나
억제하고 양몽환의 앞을 가로 막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 그날 저녁 제가 아니었더라면 도망갈 수도 없었
고 당신 대신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는데 오
늘 만나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조차 없으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그때야 양몽환은 그녀의 도움으로 위기를 빠져나온 일을 상기했다.
(만일 청의 소녀가 소식을 전해 주지 안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미치자 소녀의 애처로운 모습 앞에서 너무나 무정한 자기 스
스로를 뉘우치며 곧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