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소천의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기로 이미 결심이 되
어 있었다.
이요홍의 말이 내심 반갑기는 했으나 정중히 거절하는 것처럼 표정을
지으며
「고맙소. 그러나 소저를 청하는 초대인데 어찌 제가 가겠습니까? 또 제
가 간다면 불편함이 있을까 걱정 됩니다」
이요홍은 웃으며
「염려할 것 없어요. 더구나 배 안이 이곳 보다 조용해서 이야기하기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이 가요.」
「그럼 폐를 끼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소원인 소노선배님을 만
나게 해 주십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며 읍(揖)했다.
그러나 이요홍은 읍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듯 몸을 돌리며 한 쪽으로
외면하고 입을 가리고 약간 웃었다.
「그럼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 작정이시죠?」
「무엇이나 보답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가십시다.」
이요홍의 뒤를 따라 배에 오른 양몽환은 배안이 깨끗하게 정리 되 있음
에 놀랐다.
미리 준비된 꽃무늬의 팔선탁자(八仙卓子) 위에는 음식이 가득히 차려
져 있고 방안은 온통 주란(朱欄)꽃 향냄새로 가득차있었다. 양몽환이 두리
번거리며 여기저기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쪽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짙은
녹색 옷을 입은 소녀가 칠흑같이 검은 머리를 날리며 사뿐 사뿐 걸어 나
왔다.
이요홍은 그 소녀에게로 달려가 손을 잡으며
「동생! 동생의 동의도 얻지 않고 손님 한분을 모셨으니 용서해요.」
하며 양몽환을 가리켰다.
녹의 소녀(綠衣少女)는 양몽환을 훑어보고 그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
자와 늠름한 모습에 반하듯 바라보다가 이요홍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
다.
「홍언니! 언니와 어떻게 되는 사이죠? 미리 말씀도 안 하시고…… 반했
어요. 호호……」
이요홍도 생끗 웃으며 눈을 가늘게 흘기는 듯하다가
「미안해, 지금 곧 소개해 줄께!」
녹의 소녀는 수줍은 듯 눈을 내려 깔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요홍은 녹의 소녀를 이끌고 양몽환 앞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양몽환
에게 녹의 소녀를 가리키며
「이 분이 바로 의부의 따님인 녹봉황 소설군(緣鳳凰蕭雪君)입니다.」
하고 소개 했다.
양몽환은 약간 허리를 굽혔다.
「용서하시오. 이소저의 불청객으로 그만 이렇게 실례하게 되었소이
다.」
소설군은 상냥히 웃기만 했다. 그때 이요홍이 나서며
「왜 제가 강제로 끌고 왔다는 말씀은 안 하시죠?」
하고는 정다운 눈빛으로 양몽환을 흘기는 듯하다가 녹의 소녀에게 말했
다.
「이분은 양몽환이라 부르며 곤륜파의 일양자 노선배님의 제자야」
그러자 소설군은 의자를 가리키며
「누추한 곳에 왕림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처음으로 양몽환에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 목례했다. 그러자 양몽환도
녹의 소녀에게 답례하고 팔선탁자를 가운데로 하고 의자에 앉았다.
양몽환이 앉기를 기다려 이요홍, 소설군도 잇따라 나란히 앞자리에 앉
았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배는 호심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호수 가운데로 천천히 달려가는 배 안에서는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술잔
을 돌려가며 취홍에 잠겨 있었다.
진귀한 음식과 향내 나는 술은 방안의 분위기를 더욱 황홀하게 하여 주
었고 두 소녀의 몸에서 나는 향냄새와 주란꽃 냄새는 양몽환을 더욱 황홀
하게만 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술도 몇 순배!
양몽환의 의기는 점차로 대담해지며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도록 되
었다.
「이 소저! 이제는 저의 약속도 지켜 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