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필은 어느 날 홀로 술을 마시다가 평소 자신을 업신여기던 선비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등필은 자신을 피하며 상대하지 않으려는 두 선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지 마시오! 나도 책 좀 읽었는데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를 무시하시오? 오늘은 당신들에게 술 마시자고 청하려는 것이 아니오. 가슴속의 불만을 좀 토로하려는 것일 뿐이오.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서적에 대해 무엇이건 물어보시오. 만약 내가 대답하지 못하면 이 칼에 피를 묻히게 될 것이오.”
두 선비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이야?”라고 말하며 급히 칠경(七經)의 수십 가지 의미를 그에게 물었다. 등필은 옛 서적의 경문(經文)의 뜻풀이와 전문(傳文)을 해석한 글을 한마디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열거하였다. 두 선비가 또 역대의 역사적인 사건을 묻자 등필은 전후 3천 년 역사에 관하여 막힘없이 술술 말하였다.
이 전기문의 세 번째 단락은 등필이 무예가 뛰어나고 용감한 장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등필은 자신의 무예를 보여주며 스스로를 추천하고자 당시 섬서 지역을 다스리던 덕왕을 찾아갔다. 덕왕은 등필을 시험해보기로 결정하였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등필은 “철갑옷과 좋은 말 한 필, 그리고 보검 한 쌍이면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덕왕은 다른 사람을 시켜 그에게 갖다 주게 하였다.
또 몰래 창을 잘 쓰는 병사 오십 명에게 말을 타고 동쪽 성문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하고 나서 등필을 그쪽으로 보냈다. 덕왕은 친히 높은 곳에 올라가 지켜보려 하였고 휘하의 모든 사람도 따라 나섰다. 이윽고 등필이 도착하자 병사들은 창을 함께 휘둘렀다. 등필이 고함지르며 내달리자 사람도 말도 모두 오십 보 뒤로 물러서며 아연실색하였다. 이어서 연기와 먼지가 일더니 한 쌍의 검이 구름과 안개가 낀 것처럼 공중에서 흩날렸고 칼날에 베인 말의 머리가 잇달아 땅에 떨어지며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덕왕은 허벅지를 치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진정한 장사로구나! 진정한 장사로구나!”
[네이버 지식백과] 진사록 [秦士錄]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중국문학, 2013. 11., 임춘영, 박재우,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