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飛廻. 풍급천고원소애, 저청사백조비회.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무변낙목소소하, 부진장강곤곤래.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만리비추상작객, 백년다병독등대.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간난고한번상빈, 요도신정탁주배.
- ‘높은 곳에 올라(登高)’ 두보(杜甫·712∼770)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채 불우한 삶을 살았던 두보. 만년에는 친구 엄무(嚴武)의 천거로 잠시 절도사(節度使)의 막료(幕僚)를 지내기도 했다. 요순(堯舜) 정치의 실현을 꿈꾸어왔던 쉰셋의 시인으로선 군사 업무를 보좌하는 이 종6품 임시직이 결코 탐탁스럽진 않았으리라. 그는 반년 남짓의 막료 생활을 청산하고 엄무의 도움을 얻어 초당(草堂)을 하나 마련했다. 오랜 떠돌이 생활을 마감하는 전원생활, 풍요롭진 못해도 온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여유로운 나날이었다. “성곽을 벗어나니 시끄러운 일 없어졌고 나그네 근심마저 맑은 강물에 사그라지네. 무수한 잠자리 떼 가지런히 오르락내리락, 오리 한 쌍 마주 보며 물속을 들락날락.” ‘살 곳을 마련한 후’라는 시에 시인은 이 시절의 느긋한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엄무가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가 된 그는 또다시 유랑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만리타향 슬픈 가을에 나그네 신세, 평생토록 병치레하다 홀로 누대에 오른’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귀밑머리는 서리가 내린 듯 하얘졌고 병으로 쇠약해진 탓에 술마저 끊어야 했던 시인에게는 적이 씁쓸한 가을날이었다.